가을이 왔다는 걸 깨달은 건, 요즘 들어 저기압에 우울해있는 나를 보며, 도대체 왜 이렇게 힘이 없을까? 괜히 흐린 하늘 탓을 하고, 건강한 몸 탓도 조금 하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벌써 낙엽이 떨어지고 이젠 제법 차가워진 바람이 쎙 하고 불어주는 가을이 온게 아닌가-그렇게 나는 ‘가을’을 타고 있었다. 그렇게 바르셀로나에도 ‘가을’이 와있었다.
이번 2016년 가을을 갑작스럽게 느끼고 집에 오자마자 옷장에 쳐박아둔 두꺼운 이불을 꺼내어 폭신하게 침대를 정리했다. 그 날은 그렇게 뽀송뽀송한 새 두꺼운 이불 안에서 꿀잠을 잤다. 한껏 차가워진 아침공기에 눈을 떴고, 이불밖에서 나오기 싫어 계속 뒹굴거리다가 집에 있으면 또 가을탄다는 핑계로 더 우울할 것 만 같아, 따뜻하게 데워진 몸을 힘겹게 침대 밖으로 꺼냈다. 그리고 가방에 다이어리, 색깔 가득 필통, 연필, 지우개를 챙기고, 허기진 배와 커피한잔이 필요한 그 느낌 그대로 집을 나섰다.
그리고 도착한 요즘 나만의 가을 비밀공간–
복잡하고 지치는 일상에서 가끔은 혼자 덩떨어져 있고 싶은 그런 날. 아무것도 하고 싶진 않지만, 집에 있기엔 더 우울해질 것 같은 그런날. 그런 날이면 혼자 멍 때리고 있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고, 끄적 끄적 다이어리에 무언가를 꾹꾹 눌러쓰며 시간을 보내도 어색하지 않은 그런 공간.
하루하루 바쁘게 움직이는 바르셀로나의 사람 무리를 헤치고 도착한 나만의 공간은 조금은 외진 골목. 사람이 단한명도 없는 건 아니지만, 적당하게 사람냄새가 나고, 적당한 따뜻함에, 적당한 온도의 차한잔은 갑자기 나에게 다가온 차가운 가을을 따뜻하게 만들기 충분한 그런 곳.
PLACE
- CLANDESTINA
: 그 날 아침에 도착한 그 곳에서 조용히 자리를 잡고, 항상 커피한잔으로 시작하는 하루지만, 그 날은 왠지 우유맛이 진하게 나는 차한잔이 생각났다. 그래서 MASSALA CHAI 그리고 초코칩쿠키 하나를 시켰다. 그리고 조용히 탁자에 다이어리와 필통을 꺼내어, 그때 그 순간을 꾹꾹 다이어리에 눌러담았다.
가끔 그런 곳이 필요하고, 그런 날이 있다.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나만 아는 나만의 피신처 같은 그런 곳. 또 혼자 아침을 시작하고 혼자 머릿속에 중구난방으로 흩어져있는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그런 날
그 날이 그랬고, 오늘도 난 이 곳을 찾았다.
Clandestina [형용사] 비밀의, 내밀한, 불법의, 불법적인, 비밀리에 만들어진
주소 Baixada de Viladecols, 2, 08002 Barcelona
영업시간
월 | 10:00 – 22:00 |
화 | 휴일 |
수 | 10:00 – 22:00 |
목 | 10:00 – 22:00 |
금 | 10:00 – 22:00 |
토 | 10:00 – 22:00 |
일 | 11:00 – 22:00 |
-
SWIIT
처음 이 집을 발견한 건, Clandestina 커피숍을 나서며 집으로 향하는데 어디서 기분좋은 음악이 흘러나오는게 아닌가. 음악이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생각지도 못한 아이스크림집 하나. 그리고 그 순간 부터 나의 단골 아이스크림 가게가 되었다.
그리고 그 날도 따뜻한 차한잔으로 우울했던 가을 아침을 다독인 후, 달짝지근한 아이스크림 하나 먹으며 가을 낮의 따뜻한 햇볕을 가게 창문에 걸터 앉아 갑자기 다가와버린 가을을 천천히- 천천히 느꼈다.
TIP: 아이스크림집이지만, 커피 에스프레소도 정말 일품. 그래서 아포가토 먹으면 일석이조!
주소 Baixada de Viladecols 2c, overlooking Placa dels Tragi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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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LOS & MATILDA
아이스크림을 다먹고, 정처 없이 또 가을을 걷다보니 ‘아-역시 나오길 잘했어’ 그렇게 또 긍정의 힘으로 우울함을 훌훌 털고나니, 문득 이 가을을 같이 하고 싶은 사람들이 생각났다. (절대 옆구리가 시려워, 가을을 타서 그런건 아니였다 하하) 나의 메세지 하나에 모두가 오케이! 역시 내사람들 –
그리고 우린, 바빴던 일상을 조금 내려두고, 갑자기 찾아온 가을을 이야기하고, 오늘 하루를 토닥여줬다. 그리고 이럴때 빠질 수 없는 몸속 가득 따뜻함 알콜한잔 아니겠나.
주소 Baixada de Viladecols, 6, 08002 Barcelona
영업시간
월 | 휴일 |
화 | 19:00 – 2:30 |
수 | 19:00 – 2:30 |
목 | 19:00 – 2:30 |
금 | 19:00 – 3:00 |
토 | 19:00 – 3:00 |
일 | 19:00 – 2:30 |
그렇게 바르셀로나에서 ‘나’의 첫 가을날의 일상은이랬다. 하루가 훌쩍 가버렸다. 침대에서 뒹굴었다면 못느꼈을 나의 첫 가을 날. 혼자 시작한 아침은 ‘나’를 다잡기에 충분했고, 아이스크림 하나에 업된 그 기분을 그대로 언제나 함께하고픈 친구들과 함께 마무리했으니, 이보다 더 완벽한 하루가 어디있을까?
2016년의 끝을 향하는 어느 가을날. 뜨거웠던 태양이 잠잠해지더니, 갑자기 비가 내리고, 갑자기 쌀쌀해지고, 그렇게 연말은 내 주위로 모든 것이 갑자기 바뀌는 순간이기에 더 보내기 싫고 더 우울해지는게 아닌가 싶다. 아직 우린 2016년을 보내는 것도, 또 새해 2017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데 –
이번 11월에는 특별한 하루도 아니고, 특별한 것들도 아니지만, 보통의 바르셀로나의 가을날 나의 일상을 소소하게 이야기해본다.
11.01 ARIN’s daily / aut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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